아래 사진과 같은 기구는 커피를 내리는 추출 기구다. 베트남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매우 익숙한 한 장면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생소한 물건으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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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n(핀) 이라는 드리퍼로 커피를 즉석에서 내려 연유를 섞어 마시는 것이 특징인 베트남 커피는 사실 프랑스에서 유래된 문화다. 현재는 세계 커피 생산 2위를 자랑하지만, 그 품질과 향이 독특하여 아주 유명하지는 않아 그 많은 생산량은 전세계 각국에서 인스턴트 커피나 가공 커피로 소비된다고 한다.

아무튼 베트남 커피 하면 연유가 들어간 진한 커피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실제로 베트남에 가면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살 수 있을 만큼 아주 흔하게 판매하고 있다. 커피 하나하나 핀으로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량으로 추출한 커피와 연유를 섞어서 내주는 방식이다.

정식 명칭은 Cà phê sữa đá(까페쓰다, 까뻬쓰어다) 또는 Cà phê sữa nóng(까페쓰농, 까뻬쓰어농)이라고 부른다. 까페쓰다, 까페쒀다 아무렇게나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아이스커피를 내준다.

Cà phê sữa đá는 아이스 커피를, Cà phê sữa nóng은 따뜻한 커피를 말한다.

단어를 한 번 뜯어보자.

Cà phê = 커피
Sữa = 우유

Đá = 차가운
Nóng = 뜨거운

간단하게, 차가운 우유 커피, 뜨거운 우유 커피.
* 베트남은 우리말과 다르게 수식을 반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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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유일까?

보관성에 있다. 연유는 우유에 설탕을 첨가하여 농축한 것이다. 설탕을 넣지 않는 무당연유도 있지만, 가당연유의 경우 설탕이 40%에 육박하는 탓에 보존성이 좋지만 단 맛이 매우 강하다. 매실짱아찌에서 설탕을 1:1로 섞는 이유는 보존성 때문이다. 과실:설탕의 비율이 1:1이 되면 벌레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음식을 먹으며 살고 있다.

신선한 원유(Fresh Milk)를 유통하기 위해서는 냉장 체계가 잘 갖춰진 냉장창고-냉장차량-냉장판매대가 필요한데, 이 인프라가 생각보다는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부분이다. 더운 나라에서 연유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냉장 인프라가 갖춰진 후에도 관리하기 쉬운 장점을 가진다. 현재는 베트남도 냉장 보관-유통 체계가 잘 갖춰져 있지만, 연유가 가지는 특유의 맛과 문화적인 관성으로 아직도 연유를 선호하고 있다.


박시우 Bạc Xỉu

까페쓰어다는 우리에게 이제 친숙한 커피로 굉장히 진하고, 쌉쌀한 맛이 강한 연유커피로 인식되고 있다. 까페쓰어다 보다 조금 부드러운 커피로 박시우가 있다.

박시우는 까페쓰어다와 비슷하게 만들고, 추가로 우유를 넣어준다. 보통 밀크커피가 까페쓰어다를 말하는데, 진짜 밀크커피다. 베트남에서는 화이트 밀크 커피라고 부르기도 하며, 사이공 밀크 커피로 남부에서 더 즐겨 마신다고 한다. 눈대중으로 볼 때 50-100ml 정도의 우유를 추가로 넣어주는데, 까페쓰어다 보다 더 부드러운 커피로 변한다.


계란커피 Cà Phê Trứng

우선 이름에서 살짝 두려움이 밀려오는 계란커피. 잘 모르던 시절, 쌍화차와 같이 커피에 날계란을 얹어주는 것을 떠올렸고, 그렇게 몇 년 동안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계란커피는 날계란이 아니라 계란으로 만드는 커스터드로 만드는 커피다.

커스터드를 연유 대신 크리머로 활용하며, 토핑으로 커스터드를 살짝 얹어주는 커피다. 커스터드를 크리머로 활용해서 우유 커피와는 조금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름은 Cà Phê Trứng으로 까페쯩으로 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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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ng Nguyên Legend Café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볼 수 있는 커피 전문점이다.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G7 믹스커피를 생산하고 있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카페다. Trung Nguyên은 쭝웬으로 읽으면 된다. 쭝웬 레전드 외에도 쭝웬 E 커피도 있는데, 두 카페의 성향이 좀 다르다. 쭝웬레전드가 조금 더 고급스러운 분위기로 오래 전 우리나라의 고급 카페 문화와 닮아 있다.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하고 음료를 받는다. 주문하는 음료 외에 시원한 차를 기본으로 제공한다. 시원한 차는 다 마시면, 직원이 수시로 채워준다.

위에서 보았던 Phin 을 이용한 드립커피를 내주는 카페로, 가격은 베트남 현지물가를 생각할 때 상당히 높은 가격의 카페다. 지점 마다 가격이 다르지만, 대략적으로 40,000동에서 70,000동 사이. Sáng Tạo 등급이 높은 커피는 100,000동 까지도 올라간다. Sáng Tạo(상따오)는 그들의 대표 원두 브랜드로, 상따오 원두로 내린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마트에 가면 볼 수 있는 상따오 원두와 같은 원두다.

* Ly Tu Trong 매장 기준 (2016년 8월)

비싸게 받으려고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해놨다.

생각, 발견, 아이디어, 창조, 성공…

숫자가 높을 수록 고급 커피로 판매하고 있다. 원두에 따라 풍미와 제공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예전에는 상당한 고가에 해당했는데, 요즘은 쭝웬레전드까페 가격대를 훌쩍 뛰어 넘는 캐주얼 카페들이 등장했다.

커피 뿐 아니라 다양한 커피, 차, 아이스크림, 디저트와 간단한 식사를 주문할 수 있다. 어색하다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음식을 시킨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문화다. 심지어 외부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기도 한다.

커피를 주문하면, Phin과 커피잔, 얼음잔, 연유 등 번잡스럽게 많은 것들을 가져다 준다. Phin에서 커피가 다 내려올 때 까지 기다리면 되는데, 5분 정도?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직원이 와서 확인해주기도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물이 다 내려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핀을 내려놓고 연유를 넣거나, 이미 연유가 들어 있는 경우는 잘 저으면 된다. 아이스로 시킨 경우, 작은 잔에서 휘휘 저은 뒤에 얼음잔으로 옮겨서 마시면 된다.

Sáng Tạo의 원두는 매장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1-8까지 준비되어 있으며, 최상급 Legend 제품을 Legend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계산은 후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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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보다는 캐쥬얼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겠다면,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을 추천한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를 판매하는 커피 전문점에서도 이 연유커피를 팔고 있는데, Phuc Long 이나 Highlands 카페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스타벅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주문 방식을 가지고 있다.

Phuc Long은 똑같이 ‘카페쓰다’, 하이랜드는 Phin Sữa Đá (핀쓰다) 로 주문하면 된다. 그냥 ‘카페쓰다’로 얘기하면 주문 된다. 이름은 Phin Sữa Đá 라고 팔면서, 미리 내려놓은 커피에 연유를 섞어서 내준다. 사실 이 방식이 대부분의 테이크아웃 전문점이나 슈퍼 등 커피를 파는 곳에서 커피를 제조하는 방식이다.

가끔 커피를 내릴 때 방문하면, 거대한 핀으로 커피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늘 커피를 내려 먹던 칼리타 추출로 내리면, 아무리 베트남 원두라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꼭 핀으로 내려야 베트남에서 마시던 향을 살릴 수 있었다. 핀 자체는 상당히 느리게 추출되는 탓에 굉장히 진하게 내릴 수 있다.

분위기와 간편함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힙한 카페도 있다. Cộng Cà Phê 라는 곳이다. 이미 한국에도 지점을 낼 만큼 코코넛 커피 스무디로 유명한 곳으로 외국인이 바글바글하다.

매장 마다 외관이 다르고, 내부도 개성 있게 꾸며 놓았다. 사실 힙한 정도는 아니지만, 밋밋한 쯍웬커피 보다는 베트남 느낌이 조금 더 강한 느낌의 내부 장식이 기존의 카페들과는 다른 기분을 선사한다.

사이공과 하노이 커피를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도 문화나 음식 문화가 조금 다르지만, 저기서 표현하고 싶은 것은.. 아이스와 따뜻한 음료다. 하노이와 사이공은 농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더라..

이 글에 소개하지 못할 만큼 분위기 좋은 카페는 많다. 나중에 굉장히 분위기가 좋은 카페들을 따로 소개해 보겠다.

호텔 조식에서는 베트남 커피가 무제한 무료

애초부터 저렴한 커피지만, 호텔 조식에서도 제공이 된다. 호텔에 따라 베트남 커피만 제공이 되거나, 남미 원두 풍의 ‘일반’ 커피까지 모두 제공되는데, 대체로 베트남 커피는 거의 제공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두개의 주전자에 ‘Vietnamese Coffee’와 ‘Vietnamese Coffee with Condensed Milk’로 제공되는 곳도 있지만, 블랙만 제공되는 곳도 있었다.

블랙만 제공하면서 연유를 내놓지 않은 호텔이 종종 있었는데, 직원에게 연유를 요청했을 때, 없다고 말하거나 거절 당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매번 어디서 연유 깡통을 들고 나와 내 잔에 가득 따라주곤 했다.


유당분해효소결핍

우유나 연유가 싫다면, Cà phê đen을 시키면 된다. 취향에 따라 차가운 Đá 또는 뜨거운 Nóng 을 뒤에 붙이면 된다. Đen은 검은색을 의미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블랙커피가 아니라, 설탕블랙커피다. 단지 연유가 빠졌을 뿐인데, 정신이 번쩍 드는 짜릿하게 쓴 맛으로 설탕의 단 맛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 블랙커피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베트남 커피는 다크 로스팅으로 굉장히 쓰기 때문에, 무언가 첨가물을 넣지 않는 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생각하면 안된다. 요청에 따라 설탕을 뺄 수 있지만, 희미하게 나던 단 맛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만약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면, 스타벅스, 커피빈, 하이랜드 같이 대형 프랜차이즈에 가야 아메리카노를 맛볼 수 있다.


가짜가 나타났다

위에서 말한 것 처럼 식당, 슈퍼, 휴게소 등등에서도 카페쓰다를 주문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자판기가 도입되면서, Phin으로 내려주기는 커녕 미리 내려놓은 커피도 아니고, 자판기 버튼을 눌러 인스턴트 커피에 얼음을 넣어주는 가게들이 부쩍 늘었다. 봉지커피를 타주는 것 보다는 자판기 버튼을 누르는게 조금 더 고급스럽다는 것은 심각한 판단의 오류가 아닌가 생각된다.

로부스타 같은 베트남 전통 원두와 뻔한 연유를 섞어 어디를 가도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었던 예전과 달리 자판기 카페쓰다는 맛의 편차가 존재한다. 게다가 인스턴트 특유의 텁텁한 뒷맛까지 선사한다.

가격은 진짜 카페쓰다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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