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사고 경위는 어떤 차량이 정체로 멈춰있던 내 차와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범퍼로 피해를 입힌 차량은 큰 피해가 없었고, 내 차는 운전석 문짝이 찌그러지는 피해를 입었다. 언제 어디서나 흔하게 벌어질 수 있는 일반적인 사고였다.

상대 측에서 전적으로 책임을 인정하면서 보험접수를 해줬고, 내 차는 앞 문을 수리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나는 차량 수리를 위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견적을 내기 시작한다.


찢어지는 문짝?

우선 덴트집에 방문했다. 덴트는 차량 외형 복원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빠데로 빈 공간을 메꾸는 방식이 아니라 찌그러진 곳을 한 땀 한 땀 두들겨서 펴는 것을 덴트라고 한다. 도장 손상이 거의 없는 경우 비용적으로나 차량 이력 측면에서도 큰 부담 없이 찌그러진 곳을 펼 수 있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판금은 도장을 벗겨내고 빠데(퍼티)를 발라서 차량의 모양을 대충 낸 뒤에 사포질로 마무리 짓고 다시 도장을 입히는 방법으로 부분 도장이 진행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상처 난 곳에 더 큰 상처를 내서 복구하는 판금과 다르게 덴트라는 것은 티 나지 않게 펴서 복원하는 작업으로 상당한 기술과 시간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동네에서 이름 좀 날리는 덴트집을 방문했더니, 보자마자 문이 알루미늄으로 되어 있어서 작업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알루미늄의 특성 때문에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을 떠나서 작업 중 외판이 찢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게 된다. 작업의 위험성으로 인해 작업은 커녕 견적조차 받을 수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내 차 문짝이 알루미늄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덴트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 정도는 얼핏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덴트가 불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완벽하게 펴는 것은 기대조차 하기 어렵고, 알루미늄 특성 상 작업을 하다가 찢어질 수 없기 때문에 덴트 작업은 불가능하다고 정확하게 알려주셨다.

덴트집 사장님의 의견은 문짝 교체가 정답이라고 했다.

문짝 교체는 상당한 고민이 필요한 결정이다. 보험 이력에 단순 수리 이력만 남기는 것과 문짝 교체는 중고차 가격에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게 된다. 판금은

간단하게 정리하면, 덴트 = 무사고차, 판금 = 수리차, 교체 = 사고차로 정의 내려진다. 빠데를 떡칠하는 사고가 10번 발생해도 판금/덴트는 중고차 시장에서 단순 수리 정도로 인식하며, 교체는 무게감이 상당한 사고 차량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생각 보다 어려운 도장 공정

차량의 부분 도장은 의외로 어려운 작업이다. 차량은 생산하는 시점에 차량의 부품들이 결합된 채로 도장 공정을 거치기 때문에 같은 색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날 같은 색상 코드를 가진 차량이라도 원료의 특성과 색 조합 여부에 따라 미세하게 다른 색상을 가지게 된다. 페인트를 뿌리는 방향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길을 걷다가 햇빛이 잘 드는 곳을 지나가는 차량을 봤을 때, 앞문과 뒷문 색상이 다르게 보이는 차량은 대부분 부분적으로 다시 도장을 한 차량이다. 다양한 원인으로 도장작업에서 기존 차체와 완벽하게 동일한 색상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감쪽 같이 비슷하게 도장할 뿐, 완벽하게 똑같은 색상일 수는 없다.

아무튼 도장을 잘 하는 정비소를 찾기 시작했고, 동네 뿐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자동차 정비소 중 도장에 특화된 업체를 발견했다. 마침 발견한 곳이 생활 반경 내 엄청 가까운 곳이라 방문을 했다. 차를 맡길 것을 결심하고, 차에 있는 짐까지 전부 정리하고 차를 몰고 갔다. 도장은 보통 2-3일 이상 소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려울 뿐 아니라 손도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부가세를 안 준다고?

아침에 문 열자마자 해당 업체에 방문했고, 차량 접수를 위해 접수 직원과 둘러보던 중 ‘호’라는 이름에서 직원의 심문이 시작된다. 렌터카는 운전자 과실이 없더라도 렌터카 회사에 통보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지정공장에서 처리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말해줬다. 게다가 상대 차량이 법인 소유인 경우 부가세 지급 문제로 작업을 진행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가해차량이 개인이면 보험사에서 문제가 되지 않지만, 법인차량 명의로 등록된 차량에 한해 발생한다는데, 나는 모든 사항에 해당됐다. 내가 이용하는 렌터카 회사는 깐깐한 회사였고, 상대 차량이 법인 명의 차량이었다.

상대 차량이 법인으로 등록되어 있는 경우, 상대차량의 보험사는 공장에 부가세를 제외한 공급가액만 지급한다고 한다. 그리고 내 차량의 소유주인 렌터카 회사에서 정비소에 부가세를 별도로 지급한 뒤 처리하면 된다고 한다. 상대 차량이 개인으로 등록되어 있다면, 부가세까지 전액 지급한다고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늘 법인이 호구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상대 보험 회사에서 부가세를 제외한 금액 + 내 렌터카 회사에서 부가세 = 총 비용

아무튼 렌터카 회사가 정비소에 부가세를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렌터카 회사

어렸을 때 내 과실이 전혀 없는 사고 때문에 보험 접수를 했다가, 보험사 직원에게 혼이 났던 경험을 해봤기에 내 과실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고는 내 자동차 보험사에 통보하지 않고 사고처리를 해왔다. 상대 보험사에서 너도 보험사에 접수하라는 말을 기다렸지만, 대부분 완전한 상대 과실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비소 직원의 안내도 있었고, 정비소 선택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있어서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해봤다. 내가 이용하고 있는 렌터카 회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들의 태도는 내가 피해를 입은 사고도 렌터카 회사에 통보해야 하는 것이 맞았으며, 사고난 위치, 일시, 피해 규모, 당시 운전자, 상대 보험사의 접수번호 등 엄청나게 다양한 정보를 캐물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사고 접수 번호도 받게 된다. 혹시 내가 지정된 공장에 가지 않을까 걱정되는지, 주변의 지정 정비소 목록을 보내 주냐며 묻기도 한다.


횡설수설

내 과실이 전혀 없는 사고니까, 내가 원하는 공장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갈 수는 있다고 답변은 해줬다. ‘다만’ 수리 후에 추가적인 수리가 필요한 경우 렌터카 회사가 도와줄 수 없다고 얘기하거나, 혹시 내 과실이 발생되는 경우 면책금을 내줄 수 없다는 등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불필요한 안내‘를 계속하고 있었다.

결국 상대 차량의 보험사에 전화해서 내 과실이 없는지 확인을 해봤고, 내 과실은 없다는 답변을 받은 뒤에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다시 걸었다.

내 과실은 전혀 없다는 핵심만 다시 설명을 하고, 차량 복원을 잘 하는 업체에 가고 싶다고 문의를 하니까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지정공장이 아닌 경우 부가세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직접 정비소가 부가세를 신고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안내를 받았다. 부가세 확인이 안된다는데 내역서만 봐도 부가세가 나오는데, 그게 어려운 일이냐고 물으니 위와 비슷한 설명을 반복하는 데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래서 부가세 자료나 그런 부분들 내가 다 알아봐서 처리하면, 지정 공장이 아닌 곳에서 수리가 가능하냐고 물으니 부가세 담당자가 있는데, 연락처는 알려줄 수 없다면서 렌터카 회사의 협력 정비소가 아닌 공장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라며 단념을 시키고 있다. 말을 빙빙 돌리며, 결국 애매한 궁금증은 그냥 계속 애매한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가해차량 보험사에서 공급가액만 지급을 한다면, 어느 공장을 가더라도 부가세는 지불해야 한다. 그 공장이 협력을 맺은 공장이 아니라도 부가세는 지불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협력을 맺지 않은 공장에 차량 수리를 맡긴다고 무슨 문제가 왜 발생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렌터카 회사와의 녹음된 통화를 다시 들어봐도 명확하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수리를 맡기도 싶었던 정비소 후기를 보면, 정비 비용 납부 문제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후기를 봤다. 정확한 내용을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정비소 담당자가 왜 내 차 접수를 안 받으려고 했는지 납득이 됐다.


늘 법인은 호구

사고 부위를 둘러보고 접수증을 적는 과정에서 번호판을 보고 접수가 안 될 것 같다고 얘기했는지도 알 수 있었고, 내가 이용하고 있는 렌터카 회사 이름을 밝히자 거기가 유독 까다롭다는 얘기를 했던 것을 보면 내 사고 상황은 그 정비소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게 된다.

정비소 입장에서 렌터카 회사 자체도 껄끄러운데, 상대 차량이 법인으로 등록된 차량이기 때문에 ‘부가세’ 문제는 끝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괴롭힐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 법인은 늘 호구가 된다는 생각이다. 전화기를 살 때도 제 가격을 다 내야 하며, 인터넷 같은 것은 일반 가정과 같은 가격으로 가입이 불가능하고, 사은품은 절반도 못 받으며, 신용카드 할인/적립률은 고작 0.5%가 최고 수준으로 너무 많은 제약이 있다. 예전에 개인사업자 시절과는 너무 많은 것이 다르다.


블랙 펄의 저주

내가 이렇게 까지 예민하게 정비소를 지정하려는 이유는 도장이 꽤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차량의 기본색인 검정, 반짝 거리는 펄, 도장을 마감하는 투명 코트라는 조합으로 기존 차체와 동일한 검정색을 뽑아내는 어려움, 중간에 펄을 뿌려야 하는 공정이 꽤 어렵기 때문이다.

협력 정비소, 즉 지정 공장 목록을 한참 뒤져봤다. 적당히 렌터카 회사와 사이 좋게 지내고, 적당히 보험사 입맛에 맞는 가격으로, 적당하게 도장하고, 적당하게 고치는 업체들 뿐이었다. 그런 정비소에서 엔진오일을 교체하는 것은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도장을 적당히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지정 공장 중 제조사 제조사 직영 정비소를 찾게 된다. 전화로 문의한 결과 전화 예약은 받지 않으며, 도착해서 직접 접수를 하는 순서대로 예약을 진행한다고 했다. 대략적인 일정을 물으니 10월 초-중순 쯤 수리가 가능하다고 한다. 당장 크게 찌그러진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 가보기로 했다.


엄지 척

차를 몰고 제조사 직영 정비소에 도착해서 접수를 마쳤다. 여지 없이 10월 22일로 예약이 잡혔다. 혹시라도 중간에 취소되는 차량도 있을테니 10월 22일이나 그 전에 연락을 주냐고 물으니, 그냥 10월 22일에 차량을 입고 시키면 된다고 한다. 현재 5월 20일인데, 5달 후 예약이라는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다. 익히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제조사 직영 정비소의 전설을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접수를 하는 과정에서 주변 정비 대리점들을 추천한다. 여러 곳 중 두 곳을 동그라미 쳐주며 추천하는데, 도장 전문이라고 추천된 정비소는 당연하게도 렌터카 지정 공장 목록에 없는 업체다. ‘잘 한다 = 비싸다’ -> 렌터카/보험사에서 싫어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제조사 직영 정비소에서 도장 작업으로 추천하는 두 업체 중 한 업체는 내가 가려고 했던 업체다. 오늘 오전에 여기 다녀왔는데 거절당했다고 얘기하는데, 도장은 정말 잘하는 곳이라며 엄지를 ‘척’! 펴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내 얘기를 자세히 듣더니, 접수양식에 ‘부가세’라고 적어 두시며, 부가세를 잘 챙겨서 받아야겠다고 얘기하신다. 짧은 시간에 펀치를 두 방 맞은 기분이다. 잘하는 업체 추천에 한 방, 부가세 메모에 또 한 방.

아무튼 10월 22일까지 일그러진 문짝으로 계속 운행을 해야 한다. 차량 외관에 크게 신경 쓰는 편이 아니고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맴도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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